<마음의 사회학> 김홍중

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문학동네, 2009

  참 고생고생해서 읽은 책이다. 다 읽는데 두 달이 넘게 걸린 것 같다. 쉽지 않은 책이지만, 어렵지만은 않은 책이다. 

  사회학자로서 저자가 발휘하는 날카로움은 읽는 이를 긴장하게 한다. 저자의 칼날은 매우 예리하다. 모처럼 만난 이 예리함은 나름 즐거운 경험을 제공했다. 저자가 쓴 하나하나의 글들은 또한 매우 치밀하다. 이와 같은 높은 완성도 또한 독서의 수고를 아깝지 않게 해주었다. 

  저자의 글은 비평문 같다. 사회학 서적으로서 사회현상에 대한 비평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글쓰기 방식이 예술 작품에 대한 비평과 매우 닯아 있다. 이러한 성격은 몇 가지 점에서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이 불편함은 꼭 부정적인 것만은 분명 아니었다.)

  먼저, 사회학 서적임임에도 글의 성격은 매우 시각적이고 이미지적이다. 이 책은 마치 시나 소설을 읽을 때처럼 마음에 어떠한 이미지, 혹은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묘사나 수사가 많다. 저자는 학문적인 글과 문학적인 글의 경계를 해체해버린 것 같이, 매우 자유롭게 사회학적인 개념들을 이미지화하여 제시한다.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방식의 설명이 기존의 관념들 간의 관계에 의한 설명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이해를 돕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첫 번째 특징과 연관된 것으로, 문장이 길다. 상당히 화려한 문체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짧고 명쾌한 문장을 좋아하는 이는 이에 대한 거부감이 들 수 있겠다. 

 셋째로, 현재 사회의 상태에 대한 진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치 한 예술 작품의 의의와 의도, 표현 방식에 대한 비평문처럼, 현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의 징후'를 드러내고 진단하고 그 의미를 분석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마지막 장인 '행복의 예술, 그 희미한 메시아적 힘'을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염두에 두고 배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의 징후의 원인에 대해서는 "포스트 진정성 시대"라거나 'IMF 이후의 한국 사회'라는 식으로 통념을 활용할 뿐 더욱 세밀한 분석은 생략하고 있다. 그러한 분석은 구조주의적이라거나 다른 분과, 특히 정치경제학에 속한 것이라는 이유에서, 저자의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분히 저자의 관심은 문화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넷째로, 전문용어(?)의 사용이 많다. 내가 전공자가 아니어서인지 모르는 어휘가 많았다. 파토스, 에토스, 키치, 알레고리, 카르마 등등, 모르는 단어들이 나오면 그냥 꺼림직해하면서 넘어가거나 컴퓨터를 키고 찾아보면서 읽었다. 예술 평론가들이 고매한 작품을 비평하면서 알듯 말듯한 단어들을 사용할 때 드는 거부감 같은 것이 약간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 나는 쉬운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제 9장「 문화적 모더니티의 역사시학」이 가장 어려웠다. 그러나 니체를 만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제 14장「행복의 예술, 그 희미한 메시아적 힘」에서는 "단지 약간"의 의미를 통해 현실과 행복을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이 "단지 약간"은 매우 매력적이다. 이 "단지 약간"이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약간"은 다른 사람의 감각기관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이 책의 저자가 가지고 있는 좀더 세밀한 감각기관의 역치값이기도 하며, 저자의 통찰력이 힘을 발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그 곳에서 학자가 지녀야 할 성실성과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을 사서 기꺼이 다시 읽을 예정이다. 저자의 달변 속에서 그냥 스쳐지나거나 놓쳐 버린 것은 없는지,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볼 생각이다. 저자는 달변가다. 정확히 표현하면 문장가다. 이 정도로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이든지, 어떤 생각이든지 표현해 내지 못할게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더 긴장하게 된다.




<건축, 사유의 기호> 승효상

승효상, <건축, 사유의 기호>, 돌베개, 2004

  뭔가 있어 보임직한 표지이다. 장식을 배제한 이런 북디자인도 괜찮아 보인다.

  얼마 전, 밥을 먹으면서 틀어 놓은 TV에 건축가 승효상이 나왔다. 말을 조목조목 참 잘 하는 것처럼 들렸다. 또한 "건축은 땅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건축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결정 짓는다"는 그의 주장이 신선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그의 책을 찾아 보았고 이 책을 빌려 왔다.

  이 책은 저자가 세계 이곳 저곳(..이라기보다는 주로 유럽)에서 접한, 현대 건축사에 큰 영향을 미친 건축물 및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가 지었다는 빌라 사보아는 매우 인상 깊었다. 전에 어떤 책에선가  르 코르뷔지에가 현대 건축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읽은 기억이 있다.  빌라 사보아는 그가 어떤 기업의 중역의 의뢰를 받아 지은 주말 주택이다. 여기에는 그가 주창한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이 스며들어 있다. 필로티(piloti),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수평의 긴 창, 옥상정원이 그것이다(72~73쪽). 

  필로티는 2층 이상의 건물에서, 여러 개의 기둥들로 구성 된 1층의 빈 공간이다. 통상 1층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기둥들만 있다.  이 기둥들에 의해서 1층이 위로 들어 올려진 셈이다. 안정적인 느낌의 집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별로 공감하기 어려운 공법이다. 웬만하면 땅을 딛고 지낼 일이지 불필요하게 하늘로 붕 떠있는 느낌을 추구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또한 흉측스런 원룸 건물을 연상시킨다).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그리고 수평의 긴 창은 '지붕을 떠받치는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진 벽'으로부터 나오는 개념인 것 같다. 건축가는 기둥을 세워서 지붕을 떠받치는 일을 (벽으로부터 기둥으로)떠넘겼다. 벽은 자유롭게 어디든지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창문도 자유로워졌다. 본래 창문이 커지면 벽의 견고함은 떨어진다. 이는 천장을 지탱해야 하는 벽의 의무를 위협함으로써 건물 전체의 안전도를 떨어뜨린다. 그러나 천장을 지탱하지 않아도 되는 벽은 창문으로 인한, 안전에 대한 염려로부터 자유롭다. 때문에 이러한 벽에는 어디든지, 어떤 크기로든지 창을 낼 수 있고 '수평의 긴 창'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빌라 사보아의 안뜰과 마주한, 한 쪽 면을 온전히 거대한 창으로 낸 거실은 정말 감탄할 만했다. 건물 외벽에 낸 수평의 긴 창과 건물 속의 안뜰(중정)은 시선의 여유를 한 껏 보장해 주는 것 같았다. 매우 현대적이고 자유로우며 이성적이다. 그것이 철근과 콘크리트라는 점에서 냉철하기도 하다. 그의 다섯 가지 원칙을 따른다면 인간은 자신이 상상하는 공간,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별다른 제약 없이 구성하고 창조해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 점에서 빌라 사보아는 매우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느낌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매우 모던하다. 그의 다섯 가지 원칙과 빌라 사보아를 떠올리면, 르 코르뷔지에는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 사유의 기호>라는 책의 제목이 일으키는 심오한 이미지와는 달리 저자의 사유는 피상적인 느낌이 강하다. 건축문화를 포함하여 대중적인 것, '속세'적인 것에 대한 환멸을 여실히 표현하고 나서, '신화적'인 건축물에 대한 찬탄을 하는 식이다. 물론 저자의 주장, 그리고 저자가 느꼈을 감동에는 십분 동감하지만 구체성을 결여한 그의 언급들은 '타령'에 가깝게 들린다. 우리나라 건축계의 문제점에 대해 토로하는 언급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비판의 논거는 생략해버리고 그렇다고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는 저자의 부정적인 발언들은, 그것이 주장인지 아집인지 의심스럽게 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건축의 이론적 바탕을 이루고 있는 거의 모든 체계가 서구에서 만들어진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건축이 지식과 경험의 축적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구와 역사적 배경이 다른 우리는 그 지식의 역사와 경험의 과정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저네들이 만든 결과를 가지고 우리의 건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이라는 것도 그렇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도 그러하며 20세기 말엽의 해체주의라는 것도 그 껍데기의 파편만을 건축의 중심 사조인 양 애지중지하기도 한다. 그나마 이러한 학문이나 이론이 직수입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왜곡된 형태로 우리에게 소개되고, 본말이 전도되어 건축으로 형상화 되는 경우도 있으니 그 폐해는 자못 심각하다.(157쪽)

  요즘 내가 목격하는 주거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도가 지나쳐도 한참을 지나쳐 있다. 주거라는 존재가 우리의 삶의 문제에서 벗어나 부동산의 처지로 전락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재산 증식의 차원을 넘오 로또같은 투전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재건축이 결정되었다고 현수막을 내걸면서 자기가 사는 집과 동네가 헐리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밖에 없을 것이다. 가풍이고 뭐고 없다. 그냥 적당히 살다가 비싼 값에 되팔고 또 다른 투기 현장속으로 찾아가서 사람을 맡기면 그뿐이다. 이른바 도시의 유목민처럼 우리의 삶은 부유하고 방황하니, 가벼울 대로 가볍기 그지없다.(57쪽)
  
  주장이 난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실례를 드는 편이 나을 성 싶다. 저자의 현실 인식이 피상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삶의 구체적 경험을 가지지 못한 채 신문으로만 현실을 접해온 듯한,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 같다. 현실을 사심없이 바라보는 명확한 눈. 이 책에서는 그러한 눈이 아쉽다.



<친절한 북유럽> 김선미 박루니 장민

 김선미, 박루니, 장민, 《친절한 북유럽》, 아트북스, 2011

  도서관에 갔다가 새로 들어온 책을 모아 놓는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사실, 겉표지가 요란해서 내용에 대한 기대는 별로 하지 않고 책을 떠들러 보았다. 첵 제목으로만 봐서는 '북유럽에 대한 싱거운 소개글이겠거니' 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디자인에 관한 내용이어서 읽어보기로 했다. 솔직히, 디자인 분야를 다루는 책임에도 표지를 포함한 책 디자인 자체는 그닥 잘 돼 보이지 않는다.

  저자들은 뉴욕에서 유학 생활 중이거나 현지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와 그들의 생활을 소개한 책인 <친절한 뉴욕>을 썼다고 한다. 저자들은 이번에는 북유럽에서 활동 중이거나 수학한 디자이너들과의 인터뷰 및 그들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두 번째 책을 펴냈다.  

  저자들은 여러 자료에 대한 조사도 많이 한 것 같으나 책의 주된 내용은 인터뷰를 기초로 하여 작성한 것 같다. 기자 출신인 저자들답게 인터뷰의 결과물로부터 풍성한 내용을 끌어내고자 한 노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인터뷰에 기초했다는 점의 한계도 분명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디자인에 관한 매우 전문적인 내용이나 지식을 다루기보다는 디자인에 관한 특집 기사 정도의 느낌이 강하다. 또한 여러 디자이너들에 대한 질문 유형이 거의 비슷하고 '별로 쓸데 없는 걸 매번 물어보네'라는 생각이 드는 질문들도 있어서 아쉬웠다. 

  이 책에서는 디자인의 영역에 대한 새로운 경향을 소개한다. 제품의  모양을 결정하고 외관을 그려내는 것은 지극히 1차원적인 수준의 디자인이다. 이제 디자인은 '맥락'까지 세심하게 고려한다.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그 때의 느낌과 편의성, 제품의 역할을 미리 생각한다. 때문에 제품의 외관을 결정하는 일뿐만 아니라 어떤 재료를 쓸지, 어디에서 누가 생산을 할지, 제품에 어떤 기능을 넣고 뺄 것인지, 엔지니어와 함께 어떤 기술을 개발할지까지 디자이너가 관여할 영역은 넓다. 디자인은 한 발 더 나아가서 더 이상 제품에 머물러 있지도 않는다. 도시의 교통체계를 디자인하고 공원의 배치와 역할을 디자인한다. 정부의 도시계획에 참여하고 회사의 경영진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디자인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도 참여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북유럽의) 디자이너들은 대체적으로 디자인을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통한 창의적인 문제 해결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들이 하는 일 자체가 여러사람과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짜내면서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창의적이라고 주장하는  생각을 이해하는 데에, 그리고 자신이 창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데에 익숙하다. 또한 서로 토론하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익숙하다. 의사소통을 통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이너들의 능력이 활용되는 분야가 점처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책을 읽으면서 기발하고 어여쁜 아이디어와 제품들을 접할 때마다 신선하고 상쾌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완전무결한 깔끔함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노트인 "About:Blank"는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채우는 디자인이 아니라 비우는 디자인이 그것이다. 이 노트는 어떠한 장식이나 무늬도 없다. 제품의 로고까지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에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도 사용자가 결정한다. 디자이너를 위한 "오픈 플랫폼"을 표방하는 륀파브리켄도 기억에 남는다. 륀파브리켄은 작업과 전시, 휴식이 가능한 복합 문화공간이다. 오피스호텔(사실 이 말도 생소한데, 우리가 생각하는 오피스텔이라기보다는 디자이너들이 작업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고 전시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곳이다), 카페, 전시공간이 구비되어 있는 건물이다. 이는 집, 사무실, 카페, 음식점, 관공서, 미술관, 놀이터 등등의 범주에 포함 될 수 없는 새로운 공간이다. (나는 이렇게 새로운 생각을 처음으로 해내는 사람들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내가 이 책을 열심히 읽었던 것은 왜일까.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생각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창조자들이다. 그들은 생각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이데올로기, 관념의 늪에 빠져 있지 않는다. 그들은 이상과 현실에 다리를 놓는 데에 익숙한 것 같다. 그것은 분명 재미있을 것이다. '재미'는 어떤 것이 자신의 생각대로 될때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 재미는 엄청난 집중력과 몰입을 끌어낸다. 이는 삶의 에너지다.  디자이너들만 이러한 즐거움과 에너지를 느끼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보통사람들도, 친구와의 대화, 가족과의 대화에서,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창조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새로운 모습, 가족과 친구의 새로운 일면을 깨닫게 되고, 깨닫게 해주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더 잘 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삶의 모든 과정과 과정이 좀더 편안하고, 좀더 세련되고, 타인을 배려하고, 아름다워지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디자인이 삶의 모든 영역에 보편화되기를 바란다.  

  그러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 바쁘고 힘들고 지친다. 이야기는 다시 여유의 문제로 돌아간다. 나는 북유럽의 디자이너들이 무엇인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참으로 부럽다. 평소에 북유럽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사색하고 대화하며 휴식과 휴가를 즐기고산책과 일광욕을 하고 자신의 생활과 타인을 배려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는 그들의 삶의 방식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 소득이 월등히 높아서 돈이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오직 그 이유 때문에 충분히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일까. 제도와 사람들의 의식, 마음의 문제가 있다. (자, 이제 사회학이 끼어들 차례다...) 그런데, 내 생애에 우리나라에 어떤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그냥 이민을 가는 편이 훨씬 빠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만큼 내가 생각이 비극적이기 때문일까. 우리나라가 비극적이기 때문일까. 비극적인 나라다.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다. 

  이야기가 잠시 삼천포로 빠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디자이너처럼 생각하기'를 해보고 싶었다. 나의 사고방식도 디자인 할 수 있을까. 디자인이 꼭 시각적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음악이나 소리도 디자인할 수 있을까. 글과 문장도 디자인 할 수 있을까. 교육과정도, 행정철차도 디자인할 수 있을까. 이들 물음에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열린 마음'과 '안주하지 않음'이다. 나는 이 두 가지가 디자인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디자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일지도 모른다," "~일 것이다" 등 저자의 추측이나 느낌을 표명하는 듯한 문장들이 많다. 이는 이 책 전체에 아마추어적인 느낌을 주면서 완성도와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웬지 블로그 포스팅같은 느낌을 준다. 기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완전히 배제한 채, 명백한 사실만을 전달하는 축에 끼지도, 디자인 분야의 전문가로서 자신의 확고한 의견을 제시하는 축에도 끼지 못하면서 조심조심한 흔적이리라. 책의 마지막 부분에 오자가 한두 군데 있었다. 그 외에는 비교적 읽기 쉽고 명쾌한 문장으로 독자를 잘 리드해가고 있다. 사진들도 참 잘 찍은 것 같다. 나는 디자이너들이 일하는 건물 내부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좋았다. 

  그저 독후감을 쓰려고 시작한 포스팅인데 왜 자꾸 평을 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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